요즘은 마음이 편치않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말았다.

집은 거주하는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담고 있다. 가진 것 많은 만큼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더 가졌다면 집을 재산불리기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 가진 것 없는 나는 전세유랑민이다. 전세유랑민의 서글픔이 불만의 씨앗은 아니다. 오히려 전세유랑민이라 편하다. 없으면 없는 만큼 수준에 맞추어 살 수 있어 전세는 나같은 영세민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얹혀살기 방식이다.

그런데 집에 대한 나의 단상,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나의 소견은 치열한 자본주의 한국에서 오류가 발생된다. 그 이유는 새로 이사한지 한달 조금 지나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라왔다. 내가 살고있는 원룸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난 이 일을 일년 동안 두번을 겪고 있다.

한 때 엄마아빠가 먹여주는 밥 먹고, 재워주는 방에서 살 때는 미처 몰랐다. 그 땐 엄마아빠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기에 따르는 구속에 자유로워지고 싶은만큼 아름다운 독립을 상상하며 잠들곤 했었다.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온 방을 나의 사진으로 도배하리라.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음악을 크게 틀고 잠드리라.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구든 초대하리라.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재털이를 커다란 것으로 장만하리라.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춤을 언제든 원할때 지쳐쓰러지도록 실컷 추리라.
온전히 나만의 선택과 가치관으로 충만할 것 같은 그런 독립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난 현재 가진 것 많지 않은 사람으로서 작은 몸댕이 머물 곳을 유지하기 조차도 많은 댓가를 치뤄야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됐다. 비싼 집을 바란 것도 아니었었다. 다만 이 한 몸 온전히 쉬고, 사적 공간이 보장되면 충분했다. 처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무작정 엄마아빠집을 나왔었다. 

내 이름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던 첫 집. 그곳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10만원. 창고를 개조한듯 보이더니 하루가 멀다하고 온 살림에 곰팡이가 생겼었다. 사람들이 하룻밤만 자도 온 몸에 습기가 찬다 투정했지만 난 매일매일 그곳에 습기를 먹으며 살았는걸....그래도 그땐 무엇이든 인내할 수 있었다. 나의 독립을 위한 투쟁!!

그러다가 그곳을 탈출. 이후 두 번째로 계약서에 서명한 집은 후배와 전세금을 모아 저렴하게 마련한 옥탑방이다. 옥탑방은 엄마아빠집에서 살적 이불 속에서 꿈꾸던 그런 나의 독립생활 배경이기도 했기에 그야말로 낭만으로 충만한 이미지가 그대로 실현된 듯 했다. 하지만 옥탑방의 낭만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현실의 불편함과 충돌되기 시작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변화되는 계절을 온몸으로 흡수하더라. 겨울이면 아무리 보일러를 열심히 돌려대도 영하의 기온 그대로가 느껴졌었다. 여름이면 아무리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려대도 몸에 옷하나 걸치기 힘들정도로 온 벽에서 열을 내품었다. 그래도 '낭만적 포스의 나의 집~'이라며 얼마나 위안삼았었던가.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나의 노력을 여실없이 깨버린 소식이 날라왔으니.

어느날 갑자기 집소유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집주인은 은행빚을 갚지못해 옥탑방이 그만 경매에 넘어간다는 통보이다. 전입신고가 뭔지 임차인의 권리가 뭔지도 몰랐던 나. 남들한테는 적은 돈일지라도 거의 무일푼에서 빚내가며 마련해 열심히 대출금을 갚아가며 마련한 완소한 전세금인데 온전히 내 돈일 수 없다는 억울함은 이 사회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힘 없는 존재일 뿐이라는 걸 알게해줬다.  그리고 집이 온전히 경매처리되어 결과를 얻기까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2년? 3년? 그건 신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그로부터 2-3달 후 주인장은 은행빚을 갚게 되었다며 경매처리일정은 모두 취소됐다는 기쁜 소식. 건물 몇채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채무관계에 여차하면 무책임하게 나오는 주인장으로 인해 그동안 정신적 피해를 고스란히 떠앉다가 막상 일이 잘 풀려지니 '주인장 참~ 인간성 좋다'며 안심하는 순진한 전세유랑민. 험난한 인생경험을 공짜로 배운 것으로 나의 장기인 위안질 하고, 다시는 내게 이런 일이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꿈에도.

이후 난 옥탑방의 낭만을 대신해 겨울에는 덜 춥게, 여름에는 덜 더울 수 있는 곳으로 지금의 원룸아파트를 선택했고, 후배와 상부상조 해야만 가능했던 전세금을 이젠 열심히 모아오던 적금과 일부는 은행의 힘을 빌려 혼자 마련할 수 있게 됐고, 이젠 사회에 온전히 정착하는구나 싶었었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영화에서나 벌어지는 인간들의 환타지~ 지금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지금 내게 다시 벌어지고 있다.

내가 이사오기 전 원룸아파트의 소유회사는 다른 회사에게 인수되었는데 인수되자마자 5개월 정도 지나 바로 부도선고가 떨어지게 됐고, 알고보니 인수한 회사는 애초 브로커였던 것이고, 사람들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표현하고, 난 508호에 둥지를 트기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 경매에 넘어간다는 법원으로부터 통지를 받게 됐다. 일 년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우연히 만난 불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억지스럽지 않은가.

물론 회사의 채무상태나 집의 역사를 알아보고 들어갔어야 한다고 나무랄 수 있다. 당시 등기상으로는 원룸아파트를 저당삼은 은행채무관계가 있었으나 사실 요즘 많은 집들이 저당잡혀있는 모습을 봐왔기에, 그리고 은행빚을 최대한 적게 두어야 하는 나의 주머니 사정상 508호는 가격대비 최강이었고, 이 조건은 혹시라도 발생될 문제를 일축시켰었다. 위험은 아주 약간의 가망성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난 집문제를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의외로 많아왔다는 것을 알게됐다. (일년에 두번을 치루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그러면서 확신하게 된다. 이건 우연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나와 같은 전세유랑민들의 목을 어느 일시에 갑자기 죄어올지 모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문제문제.

대한민국에서 돈을 벌려면 투기를 해야한다고 한다. 미분양 아파트는 넘쳐나는데도 그린벨트 해제하고 아파트 계속 지어서 서민들에게 아파트 공급한단다. 그런 과식행위가 허다하지만 공공임대아파트에 5년 살다가 분양받을 돈이 없어 도로 쫓겨나 월세, 전세로 전전해야하는 여성가장 엄마를 봤었다. 그리고 나처럼 소유주의 무책임한 채무, 혹은 사기로 이제 막 사회에 정착하다가 세상의 쓴맛을 봐야하는 사람도 비일비재, 재개발지역이 포함되 쫓겨나야하는 노인들도 허다하게 봐왔다. 경제발전, 시장제일주의에 허상, 거품은 바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아픔으로 작용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도대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나의 주거권은 어디로 간거야? 우리나라에 존재는 하는거야?

Posted by 나꽃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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