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깃한 종이'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08.10.06 전세유랑민의 시련 4
  2. 2008.09.18 꿈을 꿨다
  3. 2008.09.16 심심했던 여행에서 남은 것
  4. 2008.09.09 진정한 술모금
  5. 2008.09.05 이렇게 지내
  6. 2008.08.03 점심밥
  7. 2008.07.22 등짝에 핀 꽃
  8. 2008.07.21 도피본능.

요즘은 마음이 편치않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말았다.

집은 거주하는 사람의 경제적 능력을 담고 있다. 가진 것 많은 만큼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더 가졌다면 집을 재산불리기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 가진 것 없는 나는 전세유랑민이다. 전세유랑민의 서글픔이 불만의 씨앗은 아니다. 오히려 전세유랑민이라 편하다. 없으면 없는 만큼 수준에 맞추어 살 수 있어 전세는 나같은 영세민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얹혀살기 방식이다.

그런데 집에 대한 나의 단상,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나의 소견은 치열한 자본주의 한국에서 오류가 발생된다. 그 이유는 새로 이사한지 한달 조금 지나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라왔다. 내가 살고있는 원룸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간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난 이 일을 일년 동안 두번을 겪고 있다.

한 때 엄마아빠가 먹여주는 밥 먹고, 재워주는 방에서 살 때는 미처 몰랐다. 그 땐 엄마아빠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기에 따르는 구속에 자유로워지고 싶은만큼 아름다운 독립을 상상하며 잠들곤 했었다.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온 방을 나의 사진으로 도배하리라.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음악을 크게 틀고 잠드리라.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구든 초대하리라.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재털이를 커다란 것으로 장만하리라.
Oh~ 만약 나의 집이 생긴다면 춤을 언제든 원할때 지쳐쓰러지도록 실컷 추리라.
온전히 나만의 선택과 가치관으로 충만할 것 같은 그런 독립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난 현재 가진 것 많지 않은 사람으로서 작은 몸댕이 머물 곳을 유지하기 조차도 많은 댓가를 치뤄야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됐다. 비싼 집을 바란 것도 아니었었다. 다만 이 한 몸 온전히 쉬고, 사적 공간이 보장되면 충분했다. 처음에는 그런 마음으로 무작정 엄마아빠집을 나왔었다. 

내 이름으로 계약서에 서명했던 첫 집. 그곳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 10만원. 창고를 개조한듯 보이더니 하루가 멀다하고 온 살림에 곰팡이가 생겼었다. 사람들이 하룻밤만 자도 온 몸에 습기가 찬다 투정했지만 난 매일매일 그곳에 습기를 먹으며 살았는걸....그래도 그땐 무엇이든 인내할 수 있었다. 나의 독립을 위한 투쟁!!

그러다가 그곳을 탈출. 이후 두 번째로 계약서에 서명한 집은 후배와 전세금을 모아 저렴하게 마련한 옥탑방이다. 옥탑방은 엄마아빠집에서 살적 이불 속에서 꿈꾸던 그런 나의 독립생활 배경이기도 했기에 그야말로 낭만으로 충만한 이미지가 그대로 실현된 듯 했다. 하지만 옥탑방의 낭만은 그리 오래되지 않아 현실의 불편함과 충돌되기 시작했다. 겨울이고, 여름이고 변화되는 계절을 온몸으로 흡수하더라. 겨울이면 아무리 보일러를 열심히 돌려대도 영하의 기온 그대로가 느껴졌었다. 여름이면 아무리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돌려대도 몸에 옷하나 걸치기 힘들정도로 온 벽에서 열을 내품었다. 그래도 '낭만적 포스의 나의 집~'이라며 얼마나 위안삼았었던가.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나의 노력을 여실없이 깨버린 소식이 날라왔으니.

어느날 갑자기 집소유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집주인은 은행빚을 갚지못해 옥탑방이 그만 경매에 넘어간다는 통보이다. 전입신고가 뭔지 임차인의 권리가 뭔지도 몰랐던 나. 남들한테는 적은 돈일지라도 거의 무일푼에서 빚내가며 마련해 열심히 대출금을 갚아가며 마련한 완소한 전세금인데 온전히 내 돈일 수 없다는 억울함은 이 사회에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힘 없는 존재일 뿐이라는 걸 알게해줬다.  그리고 집이 온전히 경매처리되어 결과를 얻기까지 얼마나 더 버텨야 하는지? 2년? 3년? 그건 신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그로부터 2-3달 후 주인장은 은행빚을 갚게 되었다며 경매처리일정은 모두 취소됐다는 기쁜 소식. 건물 몇채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채무관계에 여차하면 무책임하게 나오는 주인장으로 인해 그동안 정신적 피해를 고스란히 떠앉다가 막상 일이 잘 풀려지니 '주인장 참~ 인간성 좋다'며 안심하는 순진한 전세유랑민. 험난한 인생경험을 공짜로 배운 것으로 나의 장기인 위안질 하고, 다시는 내게 이런 일이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었다. 꿈에도.

이후 난 옥탑방의 낭만을 대신해 겨울에는 덜 춥게, 여름에는 덜 더울 수 있는 곳으로 지금의 원룸아파트를 선택했고, 후배와 상부상조 해야만 가능했던 전세금을 이젠 열심히 모아오던 적금과 일부는 은행의 힘을 빌려 혼자 마련할 수 있게 됐고, 이젠 사회에 온전히 정착하는구나 싶었었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영화에서나 벌어지는 인간들의 환타지~ 지금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꿈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지금 내게 다시 벌어지고 있다.

내가 이사오기 전 원룸아파트의 소유회사는 다른 회사에게 인수되었는데 인수되자마자 5개월 정도 지나 바로 부도선고가 떨어지게 됐고, 알고보니 인수한 회사는 애초 브로커였던 것이고, 사람들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표현하고, 난 508호에 둥지를 트기 시작한지 한달이 지나 경매에 넘어간다는 법원으로부터 통지를 받게 됐다. 일 년에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우연히 만난 불행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억지스럽지 않은가.

물론 회사의 채무상태나 집의 역사를 알아보고 들어갔어야 한다고 나무랄 수 있다. 당시 등기상으로는 원룸아파트를 저당삼은 은행채무관계가 있었으나 사실 요즘 많은 집들이 저당잡혀있는 모습을 봐왔기에, 그리고 은행빚을 최대한 적게 두어야 하는 나의 주머니 사정상 508호는 가격대비 최강이었고, 이 조건은 혹시라도 발생될 문제를 일축시켰었다. 위험은 아주 약간의 가망성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난 집문제를 겪으면서 주변 사람들도 그런 경험이 의외로 많아왔다는 것을 알게됐다. (일년에 두번을 치루는 사람은 흔치 않겠지만....) 그러면서 확신하게 된다. 이건 우연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문제이다. 나와 같은 전세유랑민들의 목을 어느 일시에 갑자기 죄어올지 모르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문제문제.

대한민국에서 돈을 벌려면 투기를 해야한다고 한다. 미분양 아파트는 넘쳐나는데도 그린벨트 해제하고 아파트 계속 지어서 서민들에게 아파트 공급한단다. 그런 과식행위가 허다하지만 공공임대아파트에 5년 살다가 분양받을 돈이 없어 도로 쫓겨나 월세, 전세로 전전해야하는 여성가장 엄마를 봤었다. 그리고 나처럼 소유주의 무책임한 채무, 혹은 사기로 이제 막 사회에 정착하다가 세상의 쓴맛을 봐야하는 사람도 비일비재, 재개발지역이 포함되 쫓겨나야하는 노인들도 허다하게 봐왔다. 경제발전, 시장제일주의에 허상, 거품은 바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아픔으로 작용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도대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나의 주거권은 어디로 간거야? 우리나라에 존재는 하는거야?

Posted by 나꽃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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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꿨다

구깃한 종이 2008. 9. 18. 20:09

꿈을 꿨었더랬다.
꿈에서 난 결혼을 했다.

기억나는 꿈의 내용은...
남자가 있었다. 주변에는 나의 친구들도 있었다.
난 남자가 누군지는 잘 몰라도 그 남자의 어떠한 모습을 관찰하면서 
저 정도면 결혼해도 괜찮겠는걸~ 하며 그 자리에서 프로포즈를 하고야 말았다.
남자는 느닷없는 나의 결혼하자는 말에 황당해 한다.
주변 친구들이 놀래며 "왜그러느냐" 막 그런다.
난 지금의 비혼생활이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을 찾고싶어 했다. 
그리고 나의 직장을 오고가면서 매일 지나쳐왔던 웨딩샵에 들어가 웨딩드레스를 골랐다.  
이어서 결혼식장이 진행될 곳은 교회의 마당이었던 듯 싶었다. 
교회문 밖에서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서있었고,
사람들 다리사이로는 촌스러운 오색줄무늬의 비난이 깔려져 있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신부에게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없었고, 친구들도 없었다. 그리고 신랑이 누구인지도 잘 알지 못했다.
온통 회색벽인 교회 예배당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할 일 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으려니 서글픔이 밀려왔다.
그래도 생에 한번하는 결혼식인데 이 싱숭생숭한 마음 달래주는 사람 한명 없고,
외면받고 있는 주인공 처지가 마음에 안들었던 거다.
여러 감정이 들었지만 그 조차도 말걸어주는 이 없어 곧 심심해지면서
난 벽 구석에 붙어 웨딩드레스를 입은채 바닥에 잠시 누워 잠이 들고 말았다.

곧 잠이 깼다. 눈을 뜨니 아침 7시. 알람이 울린 것이다.
지금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하면 딱 좋을 시각이지만
난 나의 결혼식이 궁금했다.
그리고 다시 잠들었다.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서.

난 다시 교회벽 구석에 붙어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교회 밖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린다.
'아차! 결혼식이 시작됐나보다. 해도해도 너무 하는군. 어떻게 결혼식이 시작되도록
신부를 데리러 오는 사람 하나 없는거야'라며 툴툴거리면서 
혼자 부랴부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나갔다.
사람들이 가리는 바람에 결혼식이 이뤄지는 행사장 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인파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신랑신부가 행진하는 카페트에 도달했다. 
난 혼자 카페트를 밟고 주례사 앞으로 갔다.
주례사 앞에 서자 내 옆에 신랑이 보였다. 
'어라~ 여기에 신랑이 있었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신랑이 나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보니 난 여태 내가 누구와 결혼하는지 모르고 있었던 게다.
신랑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신랑은 나와 눈을 마주하더니 씩~ 하고 웃는다.   
난 경악한다.
"내가 겨우 이런 남자하고 결혼하는거야~"

난 깨어났다.
팔자를 바꿔보겠다며 선택한 결혼.
하지만 내가 주인공이 되지 못한 나의 결혼식과 실망스러운 신랑.
신랑은 아무리 떠올려봐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런데 전자양을 닮았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해보니 길게 늘어져 있던
오색 카펫이며 난장스러운 결혼식장 분위기는 
엄마아빠의 결혼식 사진과 많이 닮아있었다. 
이 조합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래도 이 꿈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뭘 해도 재미없고, 감흥없는 무미한 요즘 생활 중
가장 모험될만한 짓을 꿈 안에서 행한 것이다. 푸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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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5시에서 6시로 향하는 시각이었던 것 같다.
떠날 채비를 하면서 베란다 밖의 밝아지고 있는 하늘을 봤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무척 신나는 일을 하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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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이날 외출은 멋진 일탈에 대한 기대로 나섰더랬다.
홀로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아무렇지도 않은듯 걸어나섰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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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마도 그 기대했던 여행은 실제 닿을 수 없는 꿈 속이 배경은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 실상사로 심심했던 외출의 보람을 구지 따진다면..
목적없는 여행을 할 때는 마음을 비우고
무엇에든 즐겁게 여길 수 있도록
촉각을 최대한 열어두는 것이 좋겠다는 경험.

그리고 우연히 말을 나눈 스님에게
얻어먹을 수 있었던 산채비빔밥과
부처님의 '공업'이라는 잊지못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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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가벼이 싸들고 도망가는 상상을 신나게 했지요.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꽁꽁 숨어버리는 거지요.

오늘은 그만 눈물을 쏟을뻔 했습니다.
난 사람과 함께 한 것이 아니라 짝사랑의 반복임을 알게됐거든요.
오늘은 정말 지탱하기가 힘듭니다.
내가 지겹고, 싫고, 증오스러워지는 감정에 괴로웠거든요.

그렇다고 지탱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머리 속이 온통 공황상태가 되었을지라도
최소한 이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면
결국 뭔가는 진행되고, 결정되거나, 잊혀지더라구요.

오늘이야말로 진정 술이 필요한 날인데 말이죠.

Posted by 나꽃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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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이렇게 지내고 있다


군화는 나의 인생 발걸음 하나하나에

까우를 든든하게 유지해주시고,

머리는 전처럼 자유분방함을 지향하며

매일매일 자라나주고 있고,

점심에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도 귀찮아하지만

사실 끌리는데로 부족하지 않게 먹을 수 있고...

조금 빠듯해도 크게 부족하지도 않고

그런데

 나 ... 그닥 행복하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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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밥

구깃한 종이 2008. 8. 3. 04:12

먹는걸 등한시하던 내가
지이언니와 있으면
점심밥을 기다리는 때가
하루 중 제일 행복한 시간이 되고만다.
언니의 밥을 반기는 마음과 환호가 내 입맛을 돗구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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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짝에 핀 꽃

구깃한 종이 2008. 7. 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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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그림을 새긴 이유는 단순히
30대 나이에서 오는 내 인생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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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본능.

구깃한 종이 2008. 7. 21. 22:23

도피본능을 느낀 하루.

가끔은 홀로 서 있기가 너무도 힘겹다.
그것도 내 자신에게 실망해 있을 때.

일을 하는 내내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어서는 안될 것 같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초라한 몸뚱이와 머리로
사람들 앞에 서서 시간을 벌기위해 애썼던 내 자신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피본능.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느닷없이 밀려오는 도피본능은 정말 난처해.

Posted by 나꽃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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